2003/5/10(토) 11:46 (MSIE6.0,WindowsNT5.0) 218.50.114.242 1024x768
골드만삭스의 철학?  

골드만삭스의 철학? [한겨레21]


 
골드만삭스는 130여년 전 뉴욕 맨해튼에 차린 작은 가족기업으로 시작했다. 소떼를 거래하던 농부의 아들이자 전직 교사였던 마르쿠스 골드만이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것은 1848년. 그는 맨해튼의 비좁은 지하실에 차용증을 거래하는 허름한 어음할인 가게를 열었다.

골드만은 매일 아침 외투를 걸치고 다이아몬드 도매상과 가죽상인들을 찾아가 약속어음을 샀다. 수수료 0.5%를 챙기는 어음할인업이었다. 그는 사들인 어음을 실크모자 안쪽 덧감 속에 집어넣은 뒤 한꺼번에 모아 은행에 가서 재할인했다. 당시 월가에서 “어음 할인업자의 성공은 그 사람 모자 높이로 측정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고, 그는 ‘월가의 전설이자 금세기 가장 위대한 성공신화’가 되었다.

세계 최초의 금융기관인 골드만삭스는 모건스탠리, 메릴린치에 이은 세계 3위의 거대 투자은행이다. 골드만삭스에서 일했던 리사 엔들리크는 자신이 지은 <골드만삭스>(세종서적)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골드만삭스는 70∼80년대 적대적 인수·합병이 판칠 때 공격당하는 기업의 방어를 대행해주고, 주가폭락으로 손실이 뻔한데도 영국 정부를 대신해 BP(영국석유) 주식 공모를 대행해줬다.

골드만삭스는 분명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사업이라도 원칙에 맞지 않으면 기꺼이 포기했다. 적대적인 기업사냥을 즐기는 기업이라면 골드만삭스의 고객이 되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손해를 좀 보더라도 신의라는 원칙을 고수하는 게 골드만삭스의 철학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진로와 골드만삭스의 공방에서 신의를 생명처럼 여기는 골드만삭스의 철학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오히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서 투자수익률만 올리려고 할 뿐 채권투자자로서 기업을 회생시키겠다는 노력은 관심 밖”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채권투자도 어디까지나 ‘사업’이라는 논리를 펼 수 있다. 그러나 진로쪽은 “사업도 사업 나름이다.

골드만삭스는 기업 내부 정보를 편법으로 이용해 기업사냥꾼식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한다. 골드만삭스는 외환위기 직후 국내 8대 시중은행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내고 우리 정부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 주간사로 참여하면서 한국과 본격적 인연을 맺었다. 국민은행에도 5억달러를 투자했다. 그래서 골드만삭스는 “우리는 한국경제와 상호발전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을 늘 내세운다.

그런데 법적으로 전혀 문제없는 부동산 ‘투자’였지만, 골드만삭스는 외환위기 직후 기업 부도사태가 터지면서 헐값에 매물로 나온 국내 대형 업무용 빌딩들을 마구 사들인 뒤 나중에 되팔아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진다.

여의도 대우증권 빌딩, 종로에 있는 은석빌딩과 한누리빌딩 등이 골드만삭스가 매입했던 알짜 빌딩들이다. 이것도 ‘상호발전을 도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로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들인 뒤 막대한 수익을 올려왔는데도,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면서 진로의 자구 회생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현실은 끊임없이 돈벌이만 추구하는 골드만삭스의 또 다른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건 아닐까.

대우사태 당시 외국계 채권은행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보유한 대우채권에 대해 정부의 지급보증을 요구했다. 자신들이 스스로 판단해 결정한 대출이었는데도 투자자로서 손실 책임을 나눌 생각은커녕 오히려 원리금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진로에 대한 채권자로서 골드만삭스의 최근 행동은 대우사태 당시 외국 금융자본들의 무리한 요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답변/관련 쓰기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처음 이전 다음       목록 홈 쓰기